쫓아가는 삼성전자, 느긋한 노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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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가 지난 2007년 총 1억6천100만대의 휴대폰을 판매했다. 당초 예상했던 목표치를 무난하게 달성했다. 연간 영업이익률은 11%를 기록했다. 이 정도면 썩 괜찮은 편이다. 외형적으로는 세계 휴대폰 시장 2위인 모토로라를 누르고 노키아의 뒤를 이어 세계 2위를 차지했기 때문이다.

실적에 힘입었기 때문일까? 자만심일까?

삼성전자는 지난 해 내내 "노키아를 따라잡겠다"고 말해왔다. 최지성 사장은 인터뷰 기회가 있을 때 마다 "모토로라는 더 이상 경쟁상대가 아니고 노키아만이 우리의 경쟁상대는 노키아"라고 말한다.

때맞춰 언론들도 맞장구를 쳐준다. 무너져 가던 삼성전자의 TV사업을 맡아 세계 시장 1위를 달성한 최지성 사장이 휴대폰을 맡더니 노키아를 따라잡을 발판을 만들었다고 얘기한다. 삼성전자 휴대폰 산업의 큰 획이 바뀌었다고 말한다.

분위기만 보면 이미 노키아를 다 따라잡은 것 같다.

하지만 노키아의 4분기 예상 실적치를 보면 우울하다. 아직 실적발표전인 노키아의 지난 4분기 휴대폰 판매량은 1억3천70만대 정도로 추정된다. 노키아는 직전분기인 3분기에 1억1천20만대의 휴대폰을 판매했다. 3분기 대비 18% 정도 늘어난 셈이다. 삼성전자의 판매량 증가분보다 많다.

단순히 숫자만 비교해도 삼성전자가 1년 동안 판매한 휴대폰을 노키아는 단 3개월 동안에 팔아치운 셈이다. 노키아의 분기 판매량은 세계 시장 2위부터 4위를 차지하고 있는 삼성전자, 소니에릭슨, LG전자의 분기 판매량을 모두 합쳐 놓은 것 보다 많다.

4분기 노키아의 시장 점유율은 39.5% 이상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3분기 노키아는 세계 시장에서 38%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며 1위 자리를 지켰다.


이제 어느 정도인지 감이 올 것이다. 삼성전자가 2008년 휴대폰 판매 목표량은 2억대다. 한해 5억대가 넘는 노키아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과연 삼성전자가 노키아를 따라잡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신흥시장에서의 노키아와 삼성전자를 비교해보면 이런 차이는 더욱 극명해진다. 현재 휴대폰 가입자의 증가율이 가장 높은 것은 단연 인도, 중국을 비롯한 신흥시장이다.

인도는 매월 800만명이 휴대폰을 구매한다. 한국 휴대폰 시장이 한해 2천만대 수준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얼마나 많은 수치인가!

노키아는 인도 시장에서 78%의 시장 점유율로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는 시장 점유율 5%에도 못 미친다. 또 다른 대표 신흥시장인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은 모토로라가 1등인 시장이었다. 모토로라는 중국에서 노키아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지난 2007년 1월부터 9월까지 노키아는 5천만대 이상의 휴대폰을 중국에 판매하며 모토로라의 1위 자리를 빼앗았다. 모토로라가 제일 잘 하는 시장까지 빼앗긴 것이다. 50달러도 안되는 노키아의 저가폰 공세에 세계 휴대폰 제조사들은 진퇴양난이다.

노키아의 놀라움은 이런 상황에서도 영업 이익률이 20%에 달한다는 점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50달러짜리 휴대폰을 팔아 10달러를 남기는 셈이다. 이는 40달러까지 가격을 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아무래도 노키아는 신흥 시장을 경쟁자들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은것 같다. 같은 가격에 팔아도 삼성전자보다 2배를 남길 수 있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률은 10%를 겨우 넘긴다.

노키아는 저가폰 위주의 신흥시장에서만 역량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프리미엄 시장 마찬가지로 노키아가 장악하고 있다. 특히 유럽 시장은 노키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상대적으로 미국에서는 노키아의 영향력이 약한편이다.

하지만 노키아가 지난 2007년 미국에 출시한 휴대폰은 단 3종이다. 퀄컴과의 지재권 분쟁 등으로 노키아는 미국 시장에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이랬던 노키아가 올해는 미국에 12개 이상의 최신 제품을 내 놓으며 시장 공략을 강화할 계획이다. 신흥시장과 프리미엄 시장에 모두 뛰어들면서 세계 휴대폰 시장은 노키아발 강풍에 휩싸일 전망이다.

말하고 싶은 것은 노키아를 칭찬하자는 것이 아니다. 지금의 삼성전자에 노키아를 따라잡을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됐다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잘했지만 아직은 겸손할 때다. 절치부심하며 힘을 기르고 노키아를 누를 수 있는 신 무기들을 개발해야 이 전쟁터에서 삼성전자가 승리할 수 있다. 부임한지 1년된 최지성 사장의 능력이 아무리 출중하다해도 무작정 비판없이 눈 앞에 놓여진 사실만으로 장밋빛 전망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휴대폰 시장을 TV처럼 질 좋고 싼 제품을 내 놓는 것만으로 석권할 수 있을까? 아쉽게도 휴대폰은 조금 다르다. TV보다 자주 바꾸고 트렌드에 민감하며 하드웨어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소프트웨어가 더욱 중요하게 여겨진다.

애플, 노키아, 소니에릭슨 등의 제품에 호평이 쏟아지는 이유는 좀 더 편리한 유저인터페이스와 소비자들이 요원하는 기능, 막강한 브랜드 이미지에 대한 투자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하드웨어는 잘 만들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큰 약점을 보인다. 멋들어지게 만든 하드웨어 안에 담긴 콘텐츠는 보잘것 없다.


노키아는 휴대폰을 넘어서 향후 모바일 시장의 분수령이 될 콘텐츠와 서비스에 집중 투자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콘텐츠 관련 기업들이 노키아와 손을 잡고 싶어한다. 막강한 하드웨어 시장 점유율을 갖고 있는 노키아는 막대한 잠재 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노키아 휴대폰으로 특정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하면 휴대폰을 사용하는 모든 사람들이 잠재고객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일례로 노키아는 모바일 포털 서비스인 '오비'를 비롯해 음악 서비스인 '노키아 뮤직 스토어', 게임 서비스인 'N게이지' 등을 선보이고 있다.

반면 삼성전자는 어떠한가? 소프트웨어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혜안이 있다면 소프트웨어 기업 중 M&A를 통해서라도 경쟁력을 갖춰야 할텐데 이 같은 움직임이 없다는 것은 아쉽기만 한 부분이다.

세계 IT 10대 기업들 모두 '서비스'를 지향하고 있다. 네트워크 장비나 서버를 만들던 업체들은 그들의 하드웨어에 담을 솔루션을 함께 내 놓기 위해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

IBM이 좋은 예다. 전통적인 PC 제조사였던 IBM은 급격한 PC 가격의 하락으로 인해 IT 시장에서 사라질뻔 했었다. 하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노하우를 서비스로 풀어내면서 화려하게 부활했다.

지금은 IBM을 컨설팅·서비스 회사로 분류한다. 그리고 HP, 시스코 등 유수의 기업들은 IBM 따라하기에 늦었지만 나서고 있다. 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삼성전자가 진정 노키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소프트웨어와 서비스에 투자를 해야 한다. 단지 휴대폰 몇대 더 팔았다고 만족할 때가 아니다. 여기에 만족한다면 아무리 뒤를 바짝 쫓아도 노키아가 조급해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사용자들에게 만족스러운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고 삼성전자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쫓아가는 삼성전자와 느긋하기만 한 노키아, 이 둘 사이에는 휴대폰 판매량의 차이보다도 더 큰 콘텐츠와 서비스라는 강이 놓여있다. 이 강을 넘기 위해 삼성전자가 어디에 투자를 집중해야 할지는 분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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